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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프랑스

17년 만에 다녀온 파리_ Part 4. 둘째 날 (Louis Vuitton Foundation, Ober Mamma, Bourse d Comm

by 담담도시 2023.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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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아침은 전날 슈퍼에서 사둔 Siggi's 요거트와 과일, 잠봉, 버터 그리고 아침에 숙소 앞 빵집에서 사 온 빵으로 한 끼를 때웠다. (바게트를 팔지 않는 덕분에 다른 빵을 샀지만...) Siggi's 요거트는 예전부터 먹어보고 싶었는데 그릭요거트에 가까워서 생각했던 느낌과는 좀 달랐다. 그래도 맛은 좋았고, 라임맛이 쉽게 요거트로 먹어보기 힘든 맛이라 좋았다. 그릭요거트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

버터는 오래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매장이 있던 일본까지 가서 먹어봤던 에쉬레 버터. 여기서는 단돈 3-4유로에 슈퍼에서 구할 수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어떤 제품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미사여구가 붙은 채로 어디에 놓이냐에 따라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것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그게 과하게 포장되면 좋지 않지만 사람들은 단순히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붙은 이야기까지 함께 사는 것이다 보니 그건 어쨌든 즐거움과 추억이 되기도 한다는 것.

에쉬레 버터는 여전히 맛있었지만 요즘 인기 많은 이즈니 버터 옆에서 다른 버터들과 동등하게 놓여있었고, 가격도 비슷했으며, 동네의 슈퍼에서 살 수 있다 보니 오히려 과거의 그 구하기 힘들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품절될까 봐 줄도 서고, 조심스레 한국으로 가져와 빵에 발라 천천히 오물거리던 그 순간. '이야기 속에 살아라'라는 이어령 선생님의 말처럼 나는 이야기 속에 사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살아가면서 모은 작은 이야기들은 파도가 빠져나갈 때마다 반짝이며 드러나는 조개껍질이나 돌들처럼 문득문득 다시 떠오르곤 한다.

 

 

Louis Vuitton Foundation (8 Av. du Mahatma Gandhi, 75116 Paris, France)

 


숙소를 나와 우리가 처음으로 향한 곳은 루이뷔통 파운데이션 (https://www.fondationlouisvuitton.fr/en). 이 건물은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LA에 있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등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 (Frank Gehry) 건축가의 작업이다. 파리 중심가에서 왼쪽에 있는 불로뉴 숲에 위치해 있었다. 12개의 돛을 형상화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한 날은 날이 흐려서 빛과 어우러지는 유리판의 아름다움을 잘 느끼기는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네덜란드 출신의 렘 콜하스 (Rem Koolhaas)가 설계한 밀라노에 있는 프라다 파운데이션도 참 좋아하는데 (렘 콜하스는 삼성 리움 미술관과 서울대학교 미술관도 설계했다) 그 이면에 있는 이야기들은 내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상업적으로 잘 나가는 브랜드들이 능력 있는 건축가들과 함께 문화 예술을 위해 힘쓴다는 것이 멋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프라다 파운데이션 같은 경우에는 건축 재료나 디테일들의 퀄리티도 세련되었고 전시된 작업들도 신선해서 감명 깊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파리의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의 경우에는 2014년에, 밀라노의 프라다 파운데이션은 2015년에 오픈했다는데 그 시기가 이런 움직임이 있던 시기려나?

무튼 나는 개인적으로 프라다 파운데이션의 건물 배치나 동선이 더 신선했으며, 동선에 따라서 달라지는 공간과 구성들이 어릴 적 디즈니랜드나 롯데월드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는 점에서 잘 짜인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루이뷔통 파운데이션에서는 지금 'MONET - MITCHELL'의 전시가 선보여지고 있었다. 타이틀처럼 Claude Monet (1840-1926)와 Joan Mitchell (1925-1992)의 작품들이 있었고,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진 두 사람이 풍경과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캔버스에 그려냈는지를 따라가다 보니 그 대비가 주는 감화가 있었다.

또 그 모습들에서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이야기를 살고 있고 같은 것을 바라보더라도 모든 것은 우리 자체의 필터링을 거쳐 또 다른 해석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재밌기도 하고, 때로는 오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도 되고.

 

 

 


그리고 나는 관람자이기도 하지만 디자이너이기도 한 입장이라 그런지, 전시를 보러 가면 전시된 작품들도 바라보지만 작품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재밌게 바라보곤 한다. 사이좋게 한 캔버스를 앞에 두고 속삭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노부부라던지, 작품은 그저 넓은 놀이공간을 꾸며주는 장식이라고 느끼는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이라 던 지, 너무 가까이 가면 누군가의 시선을 방해할까 봐인지 아니면 그림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은지 어느 정도 떨어져 혼자 오랫동안 한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라던지.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작업이 내 손을 떠나서 어딘가로 이동하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또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 치듯 만들어나간 다는 것이 참 특별하고 재밌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각자가 가진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했고, 그 과정의 흔적들이 남아 오늘의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을 과연 행복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창작자들에게는 부럽기도 하고 멋있기도 한, 하늘 위에 반짝이는 별 같은 순간이었다.

 

 

심플하면서 독특했던 0층의 안내 데스크
전시 공간의 천장 부분

 


건물의 맨 꼭대기에서 밖으로 나가면 건물의 구조가 더 눈에 잘 들어온다. 날이 좋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공간 자체로도 충분히 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음에 또 방문한다면 푸른 하늘이 있는 날 가봐야지.

 

Ober Mamma (107 Bd Richard-Lenoir, 75011 Paris, France)

 


루이뷔통 파운데이션을 구경하고 나서는 미리 예약해 둔 Ober Mamma에 갔다. 이탈리안 레스토랑들을 운영하는 그룹인 Big Mamma 그룹이 운영하는 식당들 중 하나이다. 빅마마 그룹의 식당들이 유명해서 몇 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에서도 많이 봐왔고 또 분명히 맛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로컬 음식을 더 좋아하는 나에게는 큰 기대감을 주는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트렌디한 곳을 경험해 보는 것도 해봄직한 일이니 미리 예약을 하고 가보았다. 먹고 나서 런던 쇼디치에 있는 Gloria (54-56 Great Eastern St, London EC2A 3QR, United Kingdom)라는 레스토랑과 분위기와 맛이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알고 보니 Gloria도 빅마마 그룹이 운영하는 곳이었다는 사실.

파리에는 빅마마그룹의 식당이 총 7개가 있다고 한다. 근데 음식 쪽에서는 하나를 성공시킨 곳이 여러 개의 다른 식당들을 내서 연달아 성공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나는 그 능력도 충분히 대단하고 그들이 대중성을 충족시켰다는 것에는 인정을 하지만. 그런 대중성을 노린 계산된 느낌의 식당이 주는 특유의 캐주얼함보다는 뭔가 더 투박하더라도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로컬 식당들에 나는 더 눈이 가곤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런던의 Gloria에 대한 만족감에도 살짝 흠집이 난 느낌? 하지만 확실한 건 '맛이 있다'. 내가 만약 파리에 살고 있다면 충분히 자주 갈 수 있는 그런 맛이다. 하지만 여행으로 짧은 시간을 내서 가는 거라면 나는 더 로컬 한 식당이나 다른 식당을 추천할 것 같다.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2 Rue de Viarmes, 75001 Paris, France) 앞에 있는 동상
매표소에 있던 Rope Chair by Ronan and Erwan Bouroullec for Artek

 


점심을 먹고 간 곳은 Les Halles지역에 위치한 피노 재단 컬렉션 미술관인 Bourse d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브루스 드 코메르스). 이곳은 찾아보니 2021년 5월에 오픈한 그리 오래되지 않은 미술관이고 18세기에는 밀창고, 1885년에는 상업 거래소로 사용되었던 역사적인 건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안도 타다오가 리노베이션을 담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내부에서 가장 핵심적인 공간은 거대한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실린더 모양의 공간이며, 유리 돔 천장을 향해 올라가는 원형 모양으로 되어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다음 전시를 위해서 준비 중이어서 작품들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공간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적이었고 아우라가 있었다.

 

 

 


피노 컬렉션은 구찌, 생로랑, 부쉐론,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가 등이 속한 '케링 (Kering) 그룹'의 창업주이자 경매사 '크리스티'의 소유주 그리고 컬렉터인 프랑수아 피노 (François Pinault) 회장의 컬렉션을 선보여지는 곳이다. 오전에 간 루이뷔통 파운데이션을 만든 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 라이벌 관계라는데 소소한 배경을 공부한 채로 두 군데를 방문해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이다.

 

 

Ryan Gander, 'I... I... I...' (2019)

 


Ryan Gander의 작업인, 하얀 벽 작은 구멍에 숨어 조잘거리며 움직이는 하얀 생쥐를 찾아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개인적으로 쥐를 좋아하진 않지만 하얀 벽에 숨어있는 생쥐의 모습은 그래도 귀여웠다.

 

 

사크레쾨르 대성당 (35 Rue du Chevalier de la Barre, 75018 Paris, France)
몽마르뜨 언덕 너머의 전경

 


마지막으로 이동한 곳은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 성당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돌계단을 직접 오르거나 아니면 돈을 내고 리프트를 이용할 수 있었다. 미세먼지와 날씨의 조합으로 성당 너머로 바라보는 전경은 뿌앴지만 그래도 그 모습 그대로 분위기 있었다. 날이 추웠는데도 불구하고 잔디밭에 움직이는 큰 쥐들을 보고 좀 놀란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여행을 가면 성당에 꼭 방문하곤 한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주의라 신성한 곳에 가서 그 고요한 분위기와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아기를 바라볼 때처럼 무해한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 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지곤 한다.

몽마르뜨 언덕은 관광객이 별로 없는 시즌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17년이라는 세월에 맞게 변화가 있었던 건지 팔찌 강매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었다. 그저 불빛이 반짝이는 작은 에펠탑 모형을 파는 상인들이 몇몇 있었을 뿐.

 

 

 


성당 내부는 여느 성당들처럼 웅장했고 고요했으며 편안했다. 어떤 부분은 블랙핑크 뮤직비디오에 나올 것 같은 모습이기도 했고... 그리고 마침 수녀님들의 성가도 들을 수 있었는데 친구들과 앉아 하루를 돌아보며 듣고 있으니 여독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새해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친구와 함께하는 새로운 도전도 곧 시작되다 보니 초에 불을 붙이고 기도하는 시간도 가졌다. 누군가의 소망 옆에 나란히 불이 붙은 초를 내려두니 사람의 소망이나 꿈이라는 것들이 한순간에 쉽게 꺼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쉽게 켜지고 퍼져나가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작은 불씨를 소중히 다루면 언젠가 활활 타오르는 순간도 올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불은 나눠줄 수도 있고 하나가 될 수도 있는 만큼 소망도 그런 모습을 띄는 것 같다. 우리의 초 옆에서 타오르던 누군가의 소망도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기를 바람과 동시에 파리에서의 또 하루도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성당에서 내려올 때는 리프트를 타지 않고 돌계단을 내려왔는데, 파리는 가로등조차도 파리스러웠다. 어떻게 무엇으로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로등의 유리에 그림이 있었고 어둠 사이로 밝게 빛나는 빛과 함께 여행의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Pho Saint-Georges (35 Rue Notre Dame de Lorette, 75009 Paris, France)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내려오는 길에 저녁은 미리 찾아둔 Pho Saint-Georges에서 베트남 쌀국수를 먹기로 했다.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다 보니 파리에서 먹는 쌀국수가 맛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여행 중에 꼭 한 군데는 들려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여러 군데를 미리 구글맵에 저장해 두고 동선에 따라 맞춰서 고르기로 했었는데 마침 날도 춥기도 하고 국물이 먹고 싶어서 딱 좋은 선택이었다. 이곳의 구글 평점이 4.8이었는데 그에 걸맞게 정말 맛있게 먹었다. 급하게 먹었는지 쌀국수의 사진은 남아있지 않다...

저 스프링롤도 바삭바삭 잘 튀겨져서 아주 맛있었고, 쌀국수도 너무 짜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맑고 간도 적당해서 친구들도 함께 게눈 감추듯 먹었다. 그리고 불어를 멋있게 하시며 서빙해 주시는 동양 아주머니도 친절해서 더 좋았다. 먹는 동안 계속해서 포장해 가는 현지인들도 많은 것을 보니 동네의 단골도 많아 보였고 다음에 가면 또 방문해보고 싶은 곳이었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도 Pho King이라고 맛있는 쌀국숫집이 하나 있는데 그곳은 국물이 더 진하고 강한 맛이라고 하면 이곳은 좀 더 마일드 한 느낌. 둘 다 맛있지만 이곳이 좀 더 편한 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알차게 저물었고 바빴던 하루 덕에 노곤노곤함을 안고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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