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말하기 이전에 나에게 있어 패션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고 싶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제치고 가장 자연스럽게 뛰어오른 단어는 '추억'
어느 시절을 떠올리면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 곁에 내가 걸치고 입고 신었던 것들이 함께 있다. 그 당시에 내가 입고 싶어 했던 옷들과 사고 싶었던 옷들, 그리고 열망하던 것이 쇼핑백에 담겨 내 손에 들려 있거나 택배로 집 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그것들을 고이 개서 내 옷장에 하나씩 내가 좋아하는 순서대로 걸어두거나 접어두었을 때. 그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는 추억이었다.
내가 내 선택으로 옷을 입는 순간들이 많아진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남짓으로 기억한다. 아직도 기억나는 내가 좋아했던 베이지색 니트 조끼. 그 옷을 입고 수업시간에 피구를 하던 모습이 떠오르고. 누나가 엄마에게 친구들과 맞춰 입기로 했다며 가리키던 짙은 베이지색의 멜빵바지가 선명하다. 색이 같은 두 멜빵바지가 옷가게 출입구 위에 나란히 걸려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갖고 싶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친구와 옷을 맞춰 입는다는 나보다 몇 살 많았던 어린아이들의 발상이 말랑하고 강렬했기 때문일까.
그 이후로는 옷과 함께 브랜드들이 떠오른다. 사실 유행을 따르는 건 단순히 세상과 발맞춰 걸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어린아이가 나를 둘러싼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순간 시작되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지 않을까? 꼭 패션이 아니라도 말이다. 아래로 내려오는 이야기나 놀이처럼, 여러 루트로 전해 내려오는 것들에 관심이 가고 일단 그것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은 나에게는 참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백화점에 가 작은 손으로 이리저리 뒤지며 신중히 골랐던 (팔과 허리 부분에 고동색 시보리가 있던) Sport Replay (스포트 리플레이)의 검정 데님재킷을 입고 강당 아래 앉아있던 기억이 나기도 하고, 그 뒤로 먼저 중학교에 올라간 누나가 산 Kipling (키플링) 가방을 따라 사서 학교 의자에 고이 걸어두며 썼던 기억도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과서를 가득 채우고 옆에 보온병까지 쏙 들어갔는데도 꽤 튼튼하고 잘 만든 가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초등학교가 끝나갈 무렵에는 Nike (나이키)의 맥스 시리즈와 Adidas (아디다스)의 슈퍼스타 시리즈가 유행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고...
그 이후로는 폴로, 리바이스, 컨버스, 노스페이스, 캘빈클라인, 버버리 블랙라벨, 마크제이콥스, 본더치, 베이프, 알마니익스체인지, 아베크롬비, 폴스미스, 르꼬끄, 프라다, 발리, 미하라 야스히로, 디키즈, 디젤, 트루릴리젼, 버커루, 스프링코트 등등이 밀려오고 흘러나갔고, 그 이후로는 또 다른 시대가 왔고 그에 걸맞은 브랜드들이 사람들과 함께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가 좋아하던, 열망하던, 갖고 싶던 것들은 세월을 타고 손길을 타고 어떤 것들은 빈티지숍에서도 만나기 어렵게 되었고, 어떤 것들은 재유행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또 당당히 사람들에게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브랜드의 흥망성쇠를 떠나서 나를 애간장 태우기도 하고, 아끼다 똥 되기도 하고, 무언가를 입고, 신고, 멘 나의 발걸음을 신이 나게 해 줬던 모든 순간들은 추억으로 여전히 내 기억 속 여러 마디를 채우고 있다.
나는 그래서 이런 시선으로 패션을 바라본다. 갖고 싶고, 입고 싶고, 신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것을 가지게 되는 마음. 때로는 결국 갖지 못하는 마음. 또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마음. 누군가에게는 고작 물건일 뿐인 그것들 주변에 얽혀 자라나는 마음들은 시끌벅적한 순간이 지나고 그저 처리되어야 할 것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이야기와 추억이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갖고 싶은 것과 가지지 못하는 것들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그 주변에는 이야기와 추억들이 또다시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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