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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네덜란드

2023.04.27_네덜란드 킹스데이 구경하기

by 담담도시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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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데이에 에인트호번의 공원에서 열린 벼룩시장

 

4월 27일은 네덜란드의 킹스데이(Koningsdag)이다. 네덜란드의 기념일 중에서 가장 시끌벅쩍하고 여기저기서 파티가 열리는 화려한 축제의 날이지만, 이방인인 나에게는 직접적으로 초대받은 느낌이 아니라 그동안 밖에 나가 구경해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그 투박스러우면서 살짝은 유치한 것 같기도 한 그런 부산스러움과 시끌시끌함, 그리고 무엇보다 한껏 신난 사람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깨진 술병들과 여기저기 밟혀있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들을 생각하면 집에서 조용히 느긋함을 즐기는 것이 더 상책이었다. 그렇게 그동안은 킹스데이를 하나의 휴일처럼 대해왔지만 문득 궁금한 마음에 친구들과 밖에 나가 구경을 하게 되었다.

 


킹스데이란?

 

네덜란드는 대표적인 입헌군주제 국가 중 하나이다. 그래서 실제 정치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들이 이끌어가지만 왕족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국가적 결정 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국왕이 여전히 동의를 해야 한다.

 

왕실 기념행사는 1885년 8월 31일에 Wilhelmina 여왕의 탄생을 기리기 위해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며, Wilhelmina의 딸 Juliana가 1949년에 왕위에 오른 후에는 새로운 여왕의 생일에 맞게 4월 30일로 맞춰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 후에 Juliana의 딸 Beatrix는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같은 날을 선택했지만, 그녀의 아들 Willem-Alexander가 왕으로 취임 한 2014년부터는 4월 27일을 왕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국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의미로 '왕의 날'(Koningsdag)에는 여기저기서 축제가 열린다. 만약에 여왕이 왕위에 있을 때는 'Koninginsdag: 여왕의 날'이라고 부른다. 우선, 사람들은 모두 오렌지 색 옷이나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거리에서는 퍼레이드가 열리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공연이 열린다. 사람들이 오렌지 색을 착용하는 이유는 네덜란드 왕가인 '오라녜 왕가'를 대표하는 색이 오렌지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벼룩시장도 또 하나의 볼거리인데, 이날은 일반적인 벼룩시장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일반인들이 직접 자기들의 물건을 값싸게 팔고. 특히 어린이들이 주도적으로 자기들이 사용하던 책이나 장난감, 인형들을 팔거나 직접 만들어 온 케이크나 빵 등을 팔기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네덜란드는 보통 세금을 내야 하는 규제가 많아서 쉽게 벼룩시장이 열리지는 않는데 왕의 날에는 특별히 그런 제한이 풀린다는 것 또한 재밌는 점이다.  

 

*킹스데이에 벼룩시장이 시작되게 된 이유는, 1966년 Juliana 여왕의 장녀였던 Beatrix가 독일군 출신의 Klaus-Georg von Amsberg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독일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많은 네덜란드인들이 그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여왕의 날에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것을 염려하여 암스테르담 중심부에서 벼룩시장을 열기로 했는데 그것이 킹스데이에 벼룩시장이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오렌지색으로 꾸며진 거리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기다리는 사람들

 

 

우선 길거리로 나가면 이렇게 오렌지색으로 이곳저곳이 꾸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이미 들떠있고 시끌시끌하다. 광장 같은 공간에서는 이미 이런저런 공연들로 분주하고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각자의 목표장소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한국에서도 콘서트나 벚꽃축제, 또는 불꽃놀이를 하는 날에는 이런 분주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들이 특정시간과 장소에 국한된다고 한다면, 네덜란드의 킹스데이는 좀 더 광범위하고 하나의 의미 있는 날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른 축제와 달리 네덜란드의 킹스데이는 좀 더 가족단위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벼룩시장을 보려면 동네의 큰 공원이나 공터 같은 곳으로 가야하는데, 나는 에인트호번의 중심부에서 남쪽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신들의 물건을 늘여놓고 팔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구경하며 열심히 살 만한 것들을 탐색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반적으로 화, 토요일에 정해진 장소에서 열리는 마켓은 상인들이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킹스데이는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아이들이 쓰던 장난감이나 인형, 또는 옷들을 파는 경우가 많았다. 

 

재밌는 점은 아이들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 온 것 같은 컵케익이나 디저트를 물건 옆에서 1유로 정도에 팔고 있던 것과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들의 물건을 직접 팔고 있고 부모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자신이 번 동전들을 모아서 다른 매대에서 새로운 물건을 구매하고 있기도 했다. 그 작고 사소한 과정에서 아마 어린아이들은 판매자로서의 경험뿐만 아니라 하나의 물건이 단순히 소비되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긍정적으로 순환하는 과정 또한 보다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보다 나은 소비와 선택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한국에서도 이런 문화가 좀 더 일상 가까이에서 이루어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한적한 공원이 이렇게 북적이고 붐비는 것은 처음이었고, 쫙 늘어진 물건들과 그 사이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색다른 모습이었다. 파는 물건들은 일반적인 가정용품이나, 아이들의 장난감 그리고 인형뿐만 아니라 카메라, 낚시도구, 버려진 중고 핸드폰들, 청소기, 컴퓨터 모니터 그리고 심지어는 갑옷처럼 상상치 못했던 물건들까지 볼 수 있었다. 다들 이런 물건들을 어디에 보관하고 있다가 들고 온 건지, 한편으로는 각자가 어딘가에서 주워온 물건들을 되팔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스치듯이 지나치면 다 비슷비슷해보이지만 세세히 보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판매자의 성격이나 캐릭터에 따라 물건을 디피해놓는 방식들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래서 하나의 공간과 그곳에 늘어져있는 물건들을 보다 보면 그 판매자의 모습이 엿보이는 것 같아서 그런 것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무언가를 판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팔았을까라는 생각도 하면서 또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공원 한 켠에서는 왜 하고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가짜 칼로 겨루고 있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왜 칼을 겨루고 있는지는 네덜란드 친구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지만, 그 모습 자체가 아이들의 장난 같기도 하고 일상에서는 보지 못하는 모습이라 신기하고 재밌게 다가왔다. 

 


오후가 될수록 시내의 골목골목이 더 붐비기 시작했고, 골목마다 사람들이 가득하고 여기저기서 음악을 틀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모든지 처음은 더 눈도 바쁘게 돌아가고 하나하나가 다 궁금하듯이, 반나절동안 구경할 것이 많았다 보니 우리는 피로해졌고 저녁식사를 위해 에인트호번에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는 훠궈 집으로 갔다. 가게의 이름은 HOT & HOT Chinese HOT POT Eindhoven. 그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맛있다고 얘기를 들어왔는데 맛집이 드문 에인트호번에서 그래도 오랜만에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원래 이국적이고 색다른 것을 많이 보다 보면 익숙한 것이 그리워지는 탓인지 그렇게 우리의 킹스데이는 네덜란드로 시작해 훠궈로 마무리되었고, 네덜란드에 온 지 8년 만에 경험한 킹스데이다 보니 이번 2023년의 킹스데이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내년에는 또 어떤 킹스데이를 보내게 될지를 벌써부터 기대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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