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3년은 영국 여행으로 시작되었다. 실제로 새해가 되고 1주일 정도 후에 떠났지만 그래도 숫자로 쓰인 날짜보다는 내 안의 시간과 마음을 기준으로 하면 새로운 한 해는 영국 여행에서 부터였다. 사람들이 보통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가장 열심히 쪼개진 시간을 쓰는 1월에 여행을 간다는 것은 나에게도 분명 선택의 이유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23년을 새로운 터닝 포인트로 삼고 있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새로운 일들을 준비하고 있다 보니 작년은 여러 고민들과 생각들로 시간을 보냈었다. 또 다른 여정을 떠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할까나. 그 시간은 주로 '채우는' 시간이었다. 내 마음도 들여다보아야 하고, 내가 새로운 도전을 할 세계도 바라봐야 하고, 같이 발걸음을 맞출 친구와의 의견도 나눠야 하고. 여러모로 채웠다 비웠다 하는 시간이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준비하고 채워야 하는 것들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내 안과 밖의 창고에는 생각들과 할 일들이 가득 채워지게 되었고 그 와중에 23년의 시작은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달리려면 몸이 우선 가벼워야 하는 것처럼 그 시점에서는 가득 짊어지고 뛰는 것보다 오히려 무게를 덜어내고 꼭 필요한 것들만 추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새로운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서 또 다른 출발을 위한 비워냄과 동시에 내가 채우는 동안 조금은 고단했던 내 마음의 평화와 즐거움을 달래고, 채워진 창고를 한번 더 정리하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장소는 영국이었고, 기간은 2주. 여행의 시작은 에든버러로 정했다. 그 뒤 일정은 뉴캐슬과 그 어딘가를 가는 것으로만 정해두었고. 에든버러를 가게 된 이유는 (해리포터의 팬인) 같이 여행할 친구가 가보고 싶어 했던 곳이었고 나는 21년 초에 가족들과 함께 방문했을 때 여러모로 좋은 인상을 받았던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처음 갔을 때는 가족들이 정한 일정에 따라간 것이었기 때문에 큰 기대감이나 목적을 가지고 향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에든버러는 나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았고 단순히 이국적이라고 하기에는 살짝의 비현실감과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자연이 주는 느낌과는 반대되는 느낌으로 하나의 도시 위에 인간이 써내려 갔던 과거의 분명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남아 간직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보통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체라고 느껴지는데 그곳은 동시대인들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며 그 도시의 역사와 시간들이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는 거대한 나무와 같은 느낌이었다.
거대한 나무 주변을 보면 현재의 시간을 보여주는 새로운 잎들과 줄기 그리고 그곳에 머물다 가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모두 스쳐가는 바람이고 그 나무가 품고 있는 세상과 시간 그리고 에너지가 또 하나의 세계처럼 느껴지는데 그런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괜히 그 도시를 걷는 나의 발걸음도 조심스레 딛게 되고 나의 움직임과 행동들이 자고 있는 주인을 깨울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에든버러 역에 걸어 나오는 순간 마주하게 되는 우뚝 솟은 스콧 기념탑 (Scott Monument)으로 시작된다. 스콧 기념탑은 에든버러 출신의 대문호 '월터 스콧'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거대 기념비라고 하는데 높이는 61m에 이르고 아름다운 고딕양식으로 유명하다. (아래 사진은 역에서 나와 바라본 모습을 찍은 것은 아니지만) 처음 역에서 나와 조금만 걷다 보면 나오는 이 높고 고풍스러운 탑은 압도적이고 살짝은 무서운 느낌까지 주었다. 그리고 왼쪽 편을 바라보면 과거 거대한 화산지대였던 곳답게 언덕과 암벽 위에 있는 에든버러 성과 올드 타운이 보이는데 그런 광경은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보니 그 이국적임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또다시 마주한 독특한 압도감을 쥔 채로 에든버러 거리 위에 발걸음을 디뎠다.

짧은 배경이야기
스코틀랜드의 수도이자, 영국의 세계 유산 중 하나인 에든버러에 대해 찾아보면서 알게 된 재밌는 점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우선 지리적으로 과거 거대 화산지대였기 때문에 에든버러 성과 올드타운이 (화산 아래 마그마가 융기해 만들어진) 암석지대를 주변으로 형성되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에든버러가 '북방의 아테네'로도 불리는 이유는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많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활동했던 도시였기 때문. 또한 언덕 위에 형성된 에든버러의 구시가지가 고대 그리스 폴리스처럼 지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에든버러의 북쪽에는 신시가지 (뉴 타운)가 있는데 그곳이 형성된 배경은 18세기가 되면서 구시가지의 위생문제와 지나친 인구문제가 대두되었고 그래서 상류층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도시 개발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의 도시 계획은 파격적이었고 미학적으로도 훌륭했기 때문에 그 도시계획을 참고한 다른 도시들도 많다고 한다.
사회 경제적으로는, 에든버러가 스코틀랜드 제1의 대도시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대학도시, 행정도시로 성장했고 탄탄한 금융, 행정 시스템의 뒷받침으로 엘리트 중심의 도시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런던 다음으로 소득이 높은 경제도시이기도 하고 과거부터 금융업이 융성했기 때문에 여러 은행들의 본사가 있다는 점도 재밌는 포인트.
이외에도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지만 결론적으로는 단순히 역사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그 과거의 시간들이 현재로 이어져 꾸준히 유서 깊은 도시로서의 역사를 써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에든버러에 도착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에든버러 성이었다. 에든버러에서 한 가지만 구경해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할 장소이기도 하고, 에든버러만의 분위기를 가장 느끼기 좋은 곳이 에든버러 성과 그 주변으로 형성되어 있는 올드타운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든버러 성을 아래에서 바라본 모습은 아름다운 성이라기보다는 견고해 보이는 요새 같은 모습이었다. 과거에 누군가 이곳을 침략하려고 했다면 애 좀 썼을 것 같은 모습. 하지만 어떻게 침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에든버러 성은 영국에서 가장 많은 포위가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공격을 많이 받았던 성 중 하나라는 말도 있다. 그런 점을 보면 인간은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는 일들도 하려는 의지와 노력에 따라서 가능한 일로 바꿔버리는 것이 인간의 힘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2023년의 에든버러 성은 요란했던 시간을 뒤로한 채 관람객들의 여유로운 모습과 웃음들만이 스치듯 지나가고 있었다. 21년에 방문했을 때는 3, 4월 즈음이었고 관광객들이 많았기 때문에 구경하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세네 시간을 염두에 두고 방문했었는데, 연말이 지난 1월 초다 보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보기에는 더 편했었다.



개인적으로 어느 곳을 방문할 때 그곳의 역사적인 배경들을 찾아보고 방문하기보다 직접 방문해서 마주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에든버러 성의 여러 요소들이나 볼거리들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나는 직접 방문한 뒤에 관심이 가는 것들을 뒤늦게 찾아보는 편인데, 예를 들어 에든버러 성에 있는 '성 마거릿 예배당'은 에든버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의 영예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배경은 1314년에 로버트 브루스 왕의 에든버러 성을 부수라는 명령에서 시작한다. 그 이유는 스코틀랜드를 잉글랜드로부터 독립시켰고, 또다시 잉글랜드가 성을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그렇게 로버트왕이 1130년에 데이비드 1세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지은 '성 마거릿 예배당'만은 남겨두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에든버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점을 먼저 알고 방문하는 것도 재밌지만 방문한 이후에 알게 되는 것도 그것만의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을 나와서 쭉 걷다 보면 중세 시대 느낌의 거리가 이어지는데 작년 겨울에 방문했을 때 보았던, 부엉이를 데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던 사람이 없어서 아쉬웠다. 덕분에 에든버러에 가면 부엉이를 길가에서 볼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나의 말들이 무색해졌기 때문에. 그 주변에는 여전히 여러 상점들과 기념품 가게, 식당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에든버러 성 정문에서 일자로 스코틀랜드 왕궁인 홀리루드 궁전 (Palace of Holyroodhouse)까지 이어지는 길게 뻗은 1.6km의 거리의 도로를 로열 마일 (The Royal Mile)이라고 부르는데 과거에는 평민들은 다닐 수 없는 길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그다음 장소로 이동한 곳은 해리포터와 관련된 것들을 파는 Museum Context: Retailer of Harry Porter Merchandise (40 Victoria St, Edinburgh EH1 2JW, United Kingdom)였다. 에든버러는 작가 조앤 K. 롤링이 머물며 해리포터를 집필한 곳으로 유명한데 그러다 보니 해리포터와 관련된 장소들이 꽤 있다. 때때로 어떤 책이나 영화와 관련된 장소에 가면 아 그래서 그 책이 쓰였구나, 그래서 그 영화가 거기서 탄생했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 에든버러와 스코틀랜드를 방문하고, 아 그래서 에든버러에서 해리포터가 쓰였구나 그래서 영국에서 왕좌의 게임이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결국 모든 창작자들은 자신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그것을 뿌리 삼아 꽃을 피운다는 것을 한번 더 실감했다.
그 가게는 빅토리아 스트릿 (Victoria Street)에 있었는데, 빅토리아 스트릿은 해리포터에서 마법용품을 파는 상점가로 나오는 '다이애건 앨리 (Diagon Alley)‘의 모티브가 되었다고도 알려져 있다. 그 거리는 여러 소품가게들로 채워져 있는데 생각보다는 짧은 거리고, 날씨에 따라서 살짝은 기대에 못 미쳐 실망하게 되기도 하는 그런 거리이다. 무엇보다 2번 방문하였을 때는 더 심심한 기분을 들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요크 (York)라는 도시에 있던 거리가 더 다이애건 앨리와 흡사했다. (그곳은 요크 여행기에 담을 예정)
그렇지만 해리포터와 관련된 제품을 파는 Museum Context는 작지만 그래도 빼먹으면 아쉬울 곳. 입구에 들어서면 여러 종류의 지팡이들, 그리고 인형들이나 여러 소품들이 가득 차 있고, 오히려 가게가 좁은 것이 좀 더 해리포터의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중간중간 보이는 중국산 느낌의 해리포터 소품들은 좀 깨는 느낌이었지만.
근처에는 the elephant house라고 조앤 K. 롤링이 해리포터를 집필한 장소로 유명한 카페가 있는데 지금은 불이 타서 휴업 중이다. 22년 3월에도, 23년 1월에도 여전히 문이 닫혀있었다.





실제 나무가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지팡이들을 들고 고민하다가 값에 못 미치는 퀄리티를 이유로 내려두고 작은 기념품으로는 버터맥주 2병으로 마무리지으며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 뒤에 향한 곳은 그레이프라이어스 커크야드 (Greyfriars Kirkyard, 26A Candlemaker Row, Edinburgh EH1 2QQ, United Kingdom).
이곳은 에든버러 구시가지 중심가에 위치한 공동묘지이다. 주변에는 중앙도서관,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 에든버러 성, 에든버러 대학교 등이 있는데, 이곳에 묻혀있는 유명인들 뿐만 아니라 조앤 K. 롤링 작가가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이 묘지를 거닐었다고 알려져 있어 해리포터 팬들에게도 유명하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톰 리들'이 이곳에 묻혔다는 설정도 있다고.
비가 살짝 내리는 흐린 날씨에 방문했다 보니 좀 스산한 분위기도 있었는데 낮에는 담대해지는 성격 탓에 그렇게 무서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검게 세월의 흔적을 품은 묘비들이 있다 보니 그래도 살짝 걸음이 빨라졌던 것도 사실이다. 묘지 앞에 있던 중국인들로 붐비던 귀여운(?) 캐릭터들이 그려진 아기자기한 중국식 카페 겸 식당이 담 너머로 보였는데 그런 언발란스한 느낌이 덜 무섭게 만들어 준 것도 있었다.



구글 리뷰에서 본 '그레이프라이어스 바비 (Greyfriars Bobby)'라는 동상이 어딨는지 안 보여서 이리저리 헤매다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가장 먼저 우리에게 당부한 것은 바비 동상의 코를 만지지 않을 것이었고 그것을 장담하면 알려준 다는 것이었다. 뭔가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을 미리 추궁받는 느낌이라 당황스러웠지만 그 관리인의 살짝 농담 어린 말속에 진심이 보였기 때문에 그래도 이해가 되었다. 이리저리 헤매도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그 바비 동상이 묘지 내부가 아니라 바깥쪽으로 나가서 보이는 길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비에 대한 이야기는 바비가 따르던 주인 존 그레이가 먼저 죽자 그레이프라이어스 커크야드에 있는 그의 묘지를 찾아가 밤낮으로 곁에 머물었다고 하고 그 이야기는 종종 영화에도 등장한다고 한다.
실제로 바비 동상 앞에 도착하자 바비의 코만 사람들의 흔적으로 광이 나고 있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눈앞에 보물을 두고 그냥 떠나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순간 우리도 행운을 위해 만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 했지만 그럼에도 내게 일어날 작은 행운보다 그 관리인의 마음이 더 진정성 있게 느껴졌기 때문에 사진만 찍고 발걸음을 돌렸다.

슬슬 출출해진 우리는 그레이프라이어스 커크야드 공동묘지로 향하다 발견했던 피자집을 떠올렸고 그곳으로 갔다. 그곳의 이름은 Civerinos Slice (49 Forrest Rd, Edinburgh EH1 2QP, United Kingdom). 대학가 근처에 있는 캐주얼한 느낌의 피자집이었고 조각으로도 먹을 수 있고 한 판으로도 먹을 수 있었다. 구글 평점도 4.5점이고 후기도 좋아서 방문했는데 점심을 가볍게 때우기에 괜찮았다. 조각이 굉장히 컸지만 두꺼운 피자 스타일이 아니라 담백하면서도 맛있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인턴생활을 위해 머물던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좋아했던 비건 피자집의 도우와 비슷했는데 그때의 맛이 느껴져서 반가웠다.

빠듯하게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에는 이번 여행이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고 배도 불렀겠다 그다음은 칼튼 힐 (Calton Hill)로 향했다. 작년에 방문했을 때는 날이 좋아서 사진을 많이 찍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는 날은 흐리고 비가 중간중간 내렸기 때문에 풍경이 예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저번 방문 때 갔었던 아서스 시트를 다른 날에 방문할 예정이었고 아서스 시트에 비해 조금은 초라한 칼튼 힐이었기에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구경했다. 칼튼 힐은 높이 100m의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지만 시내를 바라보기에는 적당한 장소이다. 아서스 시트는 1시간 이상을 잡고 가야 한다면 이곳은 30분을 잡고 와도 충분한 그런 규모.


칼튼 힐에서 내려와 시내 쪽으로 다시 돌아오면 주변에 명품숍들 및 하버 니콜스 (Harvey Nichos) 백화점, St James Quarter 몰이 있는데 그곳들을 설렁설렁 구경하고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러 디슘 (Dishoom)으로 향했다. 디슘은 런던에서 여러 번 방문했었는데 4-5년 전쯤 처음 먹었을 때의 임팩트를 그 이후로 느끼지 못했었기도 하고, 체인점이다보니 항상 갈 때마다 무난히 맛있다는 인상을 받았었기 때문에 기대를 안 했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맛있는 인도 카레를 먹기 어렵기 때문에 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는 런던에서 먹었을 때보다 더 맛있었고, 왜 그동안 안 가려고 했었지라는 생각도 다시 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위치는 Melville Monument가 있는 세인트 앤드류 스퀘어 가든 (St. Andrew Square)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고, 식당은 굉장히 규모가 컸으며 애매한 시간대였지만 사람들도 이미 많이 차있었다. 그래도 가게 규모가 크고 비수기라서 그런지 웨이팅은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가 먹은 메뉴는 갈릭난, 치즈난, 그리고 양고기가 들어간 Chef's Edinburgh Special이었던 SALLI BOTI라는 메뉴와 디슘에 가면 항상 먹게 되는 CHICKEN RUBY였고 모두 아주 맛있었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날은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쌀쌀한 스코틀랜드 날씨로 인해서 노곤노곤해진 발걸음을 이끌고 호텔로 돌아왔고 그렇게 에든버러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항상 하루가 지나면 그 하루를 되돌아보는 편인데 1년 만에 다시 방문한 에든버러는 여전히 새로웠으며 한편으로는 두 번째라 그런지 좀 더 편안한 느낌도 있었다. 그렇게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서 또 다른 일정을 기대하며 잠에 들었다.
누군가 영국을 방문한다면 나는 에든버러를 가장 앞에 추천할 것 같다. 물론 런던이 주는 영국의 느낌도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에든버러에서 더 영국다운 느낌, 다른 도시에서는 받지 못했던 느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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